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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오랜 범선의 역사를 찾아볼 수는 있지만 서구와 같은 개념의 요트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1930년경 연희전문학교의 언더우드씨가 한강변의 배 목수를 시켜 요트를 제작하고 황해 요트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한강하류에서 활동한 것이 요트의 효시라 할 수 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요트 금지령을 내려서 요트를 제작하거나 타는 행위를 금지했으나 광복 이후 미군들이 타기 시작했다. 1960년부터는 내국인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요트를 제작하여 즐기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호인의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를 보급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본격적으로 요트 보급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70년 몇몇 동호인들이 한강변 광나루에 호수용 턴 클래스(turn class) 20척을 합판으로 제작하여 대한요트클럽을 설립하면서 부터이다. 이 클럽은 대학생을 중심으로 활기를 띠었으나 1972년 대 홍수로 인해 모두 유실되는 불행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클럽의 동호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힘을 모아 국제 스나이프 클래스와 국제 오케이 딩기 클래스를 제작하여 1974년 4월 대한조정협회에 요트부를 신설하고 요트경기 보급에 나서게 되었다.

1979년 3월 17일 드디어 대한요트협회를 창립되면서 본격적인 보급단계에 들어섰으며 대한체육회와 세계요트연맹에도 가입하였다. 1986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 2002 부산아시안게임을 거치면서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또한 경기력도 조진섭 선수가 1984 LA올림픽 윈드글라이드급, 심이섭&강왈수 선수조가 1982 인도 붐베이아시안게임 엔터프라이즈급에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향상되어 박길철 선수가 1986 서울아시안게임과 1990 부산아시안게임 레이저급에서 첫 2연패를 이룩하였으며, 김대영&정성안 선수조는 1998 방콕아시안게임, 2002 부산아시안게임, 2006 카타르아시안게임 470급에서 3연패를 이룩하였다.

1998 방콕아시안게임(금6, 은1, 동3)/ 2002 부산아시안게임(금6, 은2, 동2)에서는 아시아 최고의 성적을 거둬 경기력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으며 2005년 세계청소년요트대회, 2006년 세계레이저클래스선수권대회, 2006년 세계포뮬러윈드서핑대회를 개최하였고 2009년에는 세계요트연맹 연차 총회를 부산에서 개최하여 국위를 선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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