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글 장영주

 

 

자기 생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네 가지 과정

첫째는 폭넓은 독서다.

둘째는 열린 자세의 토론이다.

셋째는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다.

넷째는 앞의 것들을 바탕으로 소우주와 같은 나의 의식세계 안에서 생각을 버무르고 고민하는 과정이다.”

 

 

  책을 읽읍시다로 다시 돌아 왔건만

  책을 읽읍시다로 다시 돌아왔지만 저는 음식을 먹다가 혀의 양쪽 끝을 잘못 씹는 바람에 한 달 넘게 음식은 물론 침을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헤맸습니다. 어쩔 수 없이 부드러운 죽과 영양음료로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두 병원의 처방약으로 간신히 음식은 먹게 되었지만 아직도 말은 할 수가 없습니다. 아내와의 대화도 간단하게 필담으로 합니다. 그 덕분에 묵언수행(默言修行)은 잘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공상의 유토피아 세계에서 행복한 내면생활을 했습니다. 그 세계에서 깨어나 디스토피아의 현실로 돌아왔지만 천당과 지옥과 같이 대비되는 두 세계가 혼돈을 일으켜 한동안 혼란스러웠습니다. 저는 10여 년동안 하루에 세 때, 식전에 뇌체조를 거르지 않고 한 덕에 연상(聯想) 능력이 현저히 향상되어 이번에 유토피아를 체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데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한 줌도 안 되게 작은 조직인 우리 단체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이 숨통을 틔우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도도리표에 따라 <책을 읽읍시다>로 되돌아왔습니다. <책을 읽읍시다>회까지 연재하고 <책을 읽읍시다를 마무리하면서>를 썼으니 차례로 말하면 이번이 회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계속 이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 단체 구성원들이 책을 멀리하는 한, 단체는 구제할 수도 구제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장담합니다. 왜 그런지를 감히 살펴봅니다.

 

  어느 경기단체가 가장 많은 책을 발간했을까?

  대한체육회에 가맹한 단체는 오늘날 줄잡아 70여 개로 알고 있습니다. 이 많은 단체들 가운데 88서울올림픽이 유치되었을 때, 우리 단체는 준가맹단체였습니다. 신생 단체라는 것입니다. 왜 준가맹단체인가 하면 가맹단체의 요건인 시도의 과반이 되는 지부(시도협회)가 결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많은 단체들 가운데 역사가 가장 짧은 우리 단체가 가장 많은 관련 도서를 발간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자랑입니다. 다른 단체들이 책을 많이 발간하지 않았다는 것은 책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격투기와 구기종목을 비롯해서 속도를 겨루는 종목들을 떠올려 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운동 기구가 우리 단체와 같이 배인 조정과 카누를 떠올려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모든 종목은 관련 기술을 근육에 기억시키는 훈련만으로도 세계적인 선수를 육성할 수 있습니다. “근육에 기억된 동작은 필요에 따라 즉각 작동한다는 원리(muscle memory)에 따른 것입니다. 그들 종목은 몸만을 사용하거나 운동 기구를 사용하는 종목도 사람의 힘과 기량만을 이용하지만, 우리 단체는 운동 기구를 자연의 힘을 빌려 부리면서 사람의 힘과 기량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따라서 요트는 많은 분야의 관련 지식과 이론을 터득하고 복잡한 경기규칙을 지켜야 하므로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많은 책이 필요하게 됩니다. 요트의 선직국들이 발간한 경기 기술도서들은 쓸데없는 화석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한계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므로 그들이 출간한 도서들을 번역하여 공부하는 것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많은 책을 발간했다는 사실을 자랑이라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책을 구성원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것은 큰 수치였습니다. 맹자는 수치를 모르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저의 손을 거쳐서 펴냈거나 인쇄만 하면 책이 되도록 편집을 마친 책을 합하면 20여 권이 넘습니다. 이 많은 책들 가운데, 구성원 여러분의 서가는 몇 권이나 꽂혀 있으며 그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이라도 완독한 책은 과연 몇 권이나 됩니까? 그러고도 입만 열면 요트를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책을 펴내는 목적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이 읽기를 바라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요트와 관련한 책은 돛배꾼이 아니고는 찾지 않습니다.

강요된 독서로는 지식은 얻을 수 없습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여 <책을 읽어라>가 아니라 <책을 읽읍시다>고 권유해 왔습니다.

  더러는 우리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왜 만날 책을 읽지 않는다고 타박만 하느냐고 항변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친김에 그 문제도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책을 읽는 목적은 지식을 얻는 데 있습니다. 지식을 얻으면 그 지식을 활용하여 일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을 꼭 찝어서 가르쳐 주어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지식이 없거나 모자란 탓으로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책을 읽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은 함()이라고 했습니다. 알면 누구나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자성어로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고 합니다. 앎과 함은 하나라는 겁니다.

  우리 단체 구성원들이 오늘날 요트와 관련한 지식을 얻으려면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책 말고 달리 관련 지식을 얻을 길이 있습니까? 간단히 생각해 봅시다. 책방에 요트와 관련한 책이 있습니까? 도서관에 그러한 책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여러분이 외국의 원서로 공부할 만큼 외국어에 능통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요트와 관련한 책공장인 <도서출판 돛배>에서 발간한 책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책은 자기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주고 사야만이 돈이 아까워서라도 읽게 되고 읽다 보면 맛을 들여 빠져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선배들이 사서 공짜로 주는 책은 읽지 않게 되는 것이 사람들의 공통된 속성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한, 요트를 사랑한다고 마치 주문(呪文)을 외우듯 염불하듯 하는 것은 말짱 헛사랑입니다.

 

  구성원들의 요트 사랑타령은 입에 발린 말이다

  사랑은 위대하고 오묘한 것입니다. 성서에 이르기를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사랑이 으뜸이다고 했습니다. 불교의 자비도 결국은 사랑입니다. 이 두 종교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의 종교입니다. 구성원 여러분의 요트에 대한 사랑도 참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사랑을 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요트경기의 본질을 아십니까? 요트경기의 진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단체 구성원들은 클래스 요트로 경기를 벌이면서 클래스의 정의(定義)를 아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미래가 보입니까?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은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비전을 제시한 지도자가 있었습니까? 여러분은 어디로 가겠다는 목적지에 대한 로드맵이 있습니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중장기 발전계획이라도 수립해 보았습니까? 하다못해 올해 연간 사업계획에 사업다운 사업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것의 실현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까? 단체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목적을 아십니까?

사랑은 더 알고 싶어진다고 했는데 더 알고 싶다는 사람들이 왜 책을 멀리합니까? 책 말고 알고 싶은 것을 가르쳐 주는, 아니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요트에 대한 사랑은 입에 발린 말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 할 것을 합니다. 사랑은 제 말을 갖습니다. 사랑만이 사람의 말을 알아 듣습니다(함석헌)”. 여러분이 요트를 사랑한다면서 할 일을 했습니까? 여러분이 요트에 대한 말을 갖고 있습니까? 요트에 대한 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트에 대한 확고한 주관입니다. 가치관이요 철학입니다. 이것들이 여러분의 내면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까? “사랑만이 사람의 말을 알아 듣는다고 했는데, 저의 말을 알아들었습니까? 저는 분명한 사람입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도 일부러 깔아뭉갠 것입니까? 하여 여러분의 사랑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 언제나 기적이 일어난다(다스칼로스)”고 했습니다. 우리 단체에 기적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까? 기적은커녕 오늘날까지 저는 기적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사랑은 시금떨떨한 개살구와 같은 허울 좋은 하눌타리 사랑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헌신으로 이어진다고 했습니다. 헌신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있는 힘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 단체에 진정으로 헌신한 사람이 있습니까? 지난날 저와 김학선과 홍순민(홍진영양 아버지)은 굶주린 배들 움켜쥐고 요트를 위해 인생의 황금기를 바쳐 헌신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요트와 함께 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했다는 뜻입니다.

  비영리단체의 구성원은 내면에서 우러난 확고한 사명의식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단체의 민낯을 들여다보면 피를 토하고 통곡할 일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이며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짧은 글에서 구성원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스스로 그에 대한 답을 찾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