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단체의 구성원이라면 경기규칙을 알아야 한다 ③
책은 한 번 읽으면 그
구실을 마치는 것이 아니
다. 재독하고 애독하며
손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애착을 느끼는 데서 그지
없는 가치를 발견할 것이다.
- 존 러스킨 -
경기규칙을 책씻이할 누구 없소?
오늘 저는 2009-2012 세일링경기규칙집의 다섯 번째 교정을 마쳤습니다. 한데 뜬금없이 책씻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아마 앞으로 우리 요트인들이 이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의 꼬뚜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이든 생각하다 보면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기 때문이겠지요.
책씻이는 옛날 서당에서 글을 배우는 아이가 책을 한 권 다 떼거나 베끼는 일이 끝나면 그의 부모가 훈장과 동접(同接)들에게 한턱을 내던 풍습을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서 책을 뗐다는 것은 책 한 권을 다 외웠다는 것이고 베꼈다는 말은 책이 귀한 시절이었기에 남의 책을 빌려다가 필사(筆寫)로 한 권의 책을 새로 꾸몄다는 뜻입니다.
아이의 부모는 자식의 공부가 일진월보(日進月步)함을 기뻐하면서 주위 분들에게 감사함을 나타내고 또 아이에게는 오늘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면학에 분발하라는 격려도 함의된 행사였습니다. 하지만 세태의 변화에 따라 서당이 학교가 되고 배우는 과목과 학습 방법이 옛날과는 판이하게 바뀌면서 아름다운 책씻이의 풍습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대신에 요즘에는 책씻이와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쫑파티가 그 자리를 매우고 있는 경향입니다. 쫑파티는 어떤 집단에서 계획했던 일을 마치고 나면 이를 자축하면서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며 뿌듯한 성취감을 나누는 모꼬지를 이르는 말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쫑“이라는 말은 우리말사전에 없습니다. 제가 추측하건대 ”쫑“은 일을 마쳤다는 종결(終結)을 축약하여 끝 종(終:끝날 종, 마칠 종, 마침내 종)자만을 따서 그 뜻을 강조하기 위해 된소리를 붙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2009-2012 세일링경기규칙집이 새로 출간됩니다. 이것은 앞으로 4년 동안 요트인들이 경기와 관련하여 바이블처럼 지키고 활용해야 할 책입니다. 4년마다 펴내는 경기규칙집이 출간된다고 해서 저는 책씻이를 하자거나 쫑파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계기로 요트인들에게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경기규칙의 새로운 공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요트인 가운데 경기규칙의 일정 부분을 떼고(외우고) 책씻이를 할 사람 누구 없느냐는 것입니다. 선수와 지도자 그리고 임원들이 경기규칙의 필요한 부분을 외워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언급했으므로 여기서는 중언부언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새해를 맞으면 누구나 새로운 각오로 뭔가를 계획합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경기규칙집을 손에 거머쥔 김에 규칙 가운데에서 자기에게 꼭 필요한 부분을 골라 외우기 위한 계획을 세워서 실천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와 관련하여 우리의 선인들은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에 관한 사례의 글을 협회 누리집(세일링경기규칙의 번역 작업에 참여하고)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공부에 의지가 약한 이는 이를 참고하면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다 함께 실천해 보자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계획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집에서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거나 하는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도 다 계획대로 순서에 따라 일을 진행합니다. 따져 보면 계획이 없는 일은 없습니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자기와의 약속입니다. 무엇이든 일단 계획을 세우고 나면 그 계획에 자기 자신이 구속되어 압박을 받습니다. 자기가 세운 계획을 실천하지 않으면 자책감에 시달려서 괴롭습니다. 그것은 자기에 대한 내면의 채찍질입니다. 그래서 계획은 게으름을 피우는 자기를 독려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는 말은 참으로 의미 심장한 교훈입니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계획을 어렵게 생각하면 끝이 없습니다. 또 처음부터 계획을 거창하게 세우면 중도에 죄절하여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계획은 자기 역량에 맞게 세워야 합니다.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 성취하고 나서 다음 계획은 한 단계 높이는 방식이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습니다.
자! 우선에 세일링경기규칙 가운데 자기가 꼭 외워야겠다는 장(章)을 몇 개 고르십시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다시 한 장을 골라서 하루에 몇 번씩 읽고 언제까지 모두 몇 번을 읽어서 외운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 계획입니까? 이를 위해 자기가 외워야겠다는 장을 복사하십시오. 이것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버스나 전철에서 또는 누군가와 만날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 시간에 읽는 것입니다. 북사물이 닳도록 읽어야 합니다. 공자는 위편삼절
,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 닳아 끊어지도록 <경전>을 읽었다 하지 않습니까. 또 세종대황의 공부법을 본받아 백독백습(百讀百習), 백 번 읽고 백 번 써도 좋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하루의 목표로 정한 읽는 횟수를 읽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져야 합니다. 하루 이틀 건너뛰다 보면 어느샌가 계획은 흐지부지되기 쉽습니다. 하루에 읽는 목표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목표 달성의 시기는 앞당겨질 것입니다.
경기규칙 제1장은 다섯 개 조항에 한 쪽 반의 분량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2장은 열네 개 조항에 여섯 쪽입니다. 제2장이 자기에게 버겁다 싶으면 먼저 분량이 적은 제1장을 외운다는 계획도 괜찮습니다. 한 번을 읽을 때마다 규칙집의 여백에 바를 정(正)자를 한 획씩 그어서 읽은 횟수를 표시하십시오.
그리하여 어느 날엔가 목표가 달성되면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책씻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자기가 세웠던 계획을 설명하고 경기규칙의 어느 장을 얼마 동안에 걸쳐 몇 번을 읽고 외웠노라고 당당하게 자랑하십시오. 그리고 또 앞으로는 어느 장을 공략하겠노라고, 책씻이를 위한 모꼬지가 번거로우면 협회 누리집을 통해 글로 책씻이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이어지는 다음 계획의 의지가 확고해지면서 자신감도 더해질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이런 계획을 세워 실천에 성공함으로써 이 소문이 요트인들 사이에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간다면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요트인들 사이에 이를 본받는 풍조가 만연되어 너도나도 경기규칙을 외운다면 우리의 앞날은 희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단체의 발전은 거창한 구호나 계획에 있지 않습니다. 구성원 각자가 열심히 공부하여 전문성을 높인다면 그것이 바로 발전인 것입니다.
너부터 실천하라
여기까지 글을 쓰다가 갑자기 ”말로 가르치면 따진다 하고 몸으로 가르치면 따른다“는 말이 퍼득 떠올라 움찔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의 내면에서도 너부터 실천에 옮기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사실 저는 선수도, 지도자도, 경기운영요원도 아니요 경기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임원도 아닙니다. 경기규칙과 억지로 연관을 짓는다면 저 자신이 요트인이라고 여기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자칭 요트인이랍시고 나서서 다른 이들에게 경기규칙을 외우라고 권장하려면 저 자신부터 실천하는 것이 백 번 옳습니다. 그동안 저는 경기규칙을 우리말로 옮기고 교정을 보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다섯 번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교정을 본다는 것은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는 작업이므로 문장을 이해해 가며 책을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다섯 번을 읽었지만 전체를 고루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본원칙과 제1장만이라도 외울 계획으로 그것이 수록된 두 쪽을 손맡에 갔다 두고 열 번을 읽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이 글을 대할 무렵에는 다 외웠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가장 먼저 기억력이 떨어집니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 읽고 돌아서면 잊어먹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기본원칙과 제1장도 사실은 외우기 버겁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킬 것입니다.
경기규칙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제가 기본원칙과 제1장만이라도 외워야겠다고 작심한 데는 솔선수범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책을 읽는 부모 밑에서 책을 읽는 아이가 자라고 그 아이는 다시 책을 읽는 아이를 길러 냅니다. 책은 이렇게 핏줄을 타고 흘러 훌륭한 책 읽는 전통을 만들어 냅니다. 책은 좋은 부모를 만들고 좋은 부모는 훌륭한 아이를 길러 냅니다. 그 아이는 다시 책을 만들어 냅니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 장중한 역사를 만들어 냅니다.“ 는 글을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경기규칙을 외우는 선배 밑에서 후배가 그것을 본받아 자라고 그 후배는 다시 경기규칙을 외우는 후배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내림이 전통으로 자리잡을 때, 그 집단은 참다운 경기단체로 탈바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배와 지도자가 열심히 공부하는데, 그 밑에서 후배와 선수가 공부를 외면하고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습니다. 그 후배와 선수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공부에 열중하거나 아니면 그 집단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선배와 지도자가 공부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그 아랫사람들이 공부하기를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허황되고 어리석은 기대입니다. 이러한 선배와 지도자가 그들의 후배와 선수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쳐 보십시오. 아마 그들 가운데 십중팔구는 돌아서면서 ”니나 잘하시오“라고 구시렁거릴 것이 뻔합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공부에 나태한 우리 단체의 풍조는 선배와 지도자의 탓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윗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조심스럽기도 하거니와 책임도 큽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요트와 관련된 각 가맹단체의 임원 그리고 선배와 지도자라고 뽐내는 요트인들은 각자의 역할에 따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기규칙을 골라 당장 외우십시오, 내일은 늦습니다. 자고 새면 내을은 또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자기 자리에 맞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후배들의 존경은 고사하고 그들의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에르하르트 틀레는 그의 저서
우리는 그가 지적한 세 가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는 현재의 순간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니 어떤 일이든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즐거움이 극적으로 커진다는 것이고 셋째로는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왜 요트에 매료되었는지 차분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바로 즐거움과 삶의 질을 추구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즐거움과 삶의 질은 상호 작용하는 상관관계에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즐긴다는 말은 참으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즐겨야 이긴다“는 말은 동서고금의 구별이 없습니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알기만 한 자는 좋아하는 자를 당할 수 없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당할 수 없다(知之者 不加好之者 好之者 不之落之者)“ 했고, 서양에서는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이길 수 없으며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즐겁지 않은 훈련은 자기 징벌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경기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요체는 즐거움인데 이 즐거움은 어디서 올까요. 아는 데서 솟습니다. 알면 즐겁고 즐거우면 더욱 알려고 애를 씁니다. ”즐겨야 이긴다“는 격언은 즐거움이 이기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한껏 즐기십시오. 즐겁지 않으면 공부를 해 보십시오. 알면 알수록 즐거움이 더해질 터이니까요.
요트인은 왜 경기규칙을 알아야 하나
저는 경기규칙의 작업을 하는 동안에 규칙집을 몇 권이나 발간할 것이냐고 사무국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500권을 발간하겠다고 하더군요. 오늘날까지 매번 1,000권씩 발간해 온 것으로 아는데 좀 의아스러웠습니다. 그 이유는 1,000권을 발간해도 팔리는 것은 500권을 밑돌았으므로 나머지는 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요트인구는 날로 늘어나는 추세인데 규칙집의 판매는 오히려 줄어든다니 이것이 발전할 수 있는 단체의 모습입니까?
작년에 회원등록을 한 숫자는 600명이 넘고 게다가 협회의 가맹단체 임원은 회원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 임원만도 대충 전국적으로 300명이 넘는다고 볼 때, 등록된 회원과 가맹단체의 임원은 즐잡아 1,000여 명에 이릅니다. 여기다 오늘날까지 크루저 면허를 취득한 인원도 1,000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또 여기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스스로 요트인이라고 자칭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저와 같은 사람들) 이들도 500여 명에 가깝다고 볼 때, 우리나라의 요트인구는 대략 2,500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경기규칙집을 500권 발간해서 그것이 다 팔린다 해도 그 숫자는 우리나라 전체 요트인구의 1/5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트인 다섯 사람 가운데에서 네 사람은 경기규칙집을 갖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수록되었는지 알지도 못한 맹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이들은 다른 이들 앞에서는 요트인이라고 으스댈 것입니다. 참으로 부끄럽고도 웃픈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기규칙에는 요트인의 윤리강령이랄 수 있는 지켜야 할 다음과 같은 덕목이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 스포츠맨십
2. 시맨십
3. 좋은 매너
4. 세일링 스포츠의 명예
위의 네 가지 덕목이 경기규칙에 규정되어 있다 해서 경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트인이라면 일상생활에서도 지켜야 할 필수 덕목입니다. 이것들은 항목별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건전한 상식을 지닌 요트인이라면 다 아는 내용입니다.
이 네 가지 덕목을 하나로 압축하면 서양적인 관점에서는 ”신사의 도(道)“일 것이고 동양적으로는 ”사람의 도리“, 다시 말하면 사람다움일 것입니다.
우선 신사라고 하면 누구나 영국 신사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국 신사는 어떤 덕목을 지녀야 하는지 살펴보기로 합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 영국 신사의 기본 덕목은 다음 네 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의 오른쪽과 같습니다.
<우선 송구한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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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인 여러분의 건승을 바라며,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