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며

                                                                                               글 장 영주

 

               해도 회장도 바뀌었으니 단체도 싹 바꿔야지요

 

 우리는 어김없이 또 새해를 맞았습니다.

 우리 단체의 모든 구성원들은 좋은 꿈을 안고 그 결실을 맺기 위한 저마다의 결의를 다졌으리라 믿습니다.

희망찬 새해가 밝았지만 햇빛은 그다지 밝아 보이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난해 끝머리에 느닷없는 대통령의 내란 획책으로 말미암은 불길이 새해까지 번져 그 여파로 햇빛이 가려진 탓입니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우리 단체는 새해와 함께 새회장을 맞았습니다. 새회장의 선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바라건대 앞으로 4년의 임기 동안 단체의 적폐를 말끔히 씻어내고 새롭게 출발하여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단체를 정상 궤도에 올려 놓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대합니다.

 

 낱말의 앞가지에 새자()가 붙으면 무엇이든 신선한 느낌을 주고 희망을 갖게 합니다. 새해와 새회장에도 새자가 달렸으니 희망의 겹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마당에 희망을 어디다 걸어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다 함께 생각할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싶어 붓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앞날을 생각할 때는 지난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래는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 단체의 역사는 짧지만 많은 회장이 거쳐 갔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분들이 한결같이 신생단체를 정상궤도에 올려 놓지 못한 채 불명예를 안고 물러났습니다(물론 그 가운데 일부는 깜량이 되지 않으면서 이름병에 걸려 회장 자리를 덥썩 꿰찬 탓도 있겠지만).

 

 왜 그런 결과를 낳았을까요? 제아무리 훌륭한 분들일지라도 혼자서는 단체를 운영할 수 없는 건데 회장의 뜻을 받들어 함께 사업을 추진할 유능한 참모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고 (獨不將軍) 한 그루의 나무로는 숲을 이룰 수 없다( 獨木不林)는 말이 이를 잘 대변해 줍니다.

 

  유능한 회장이 되려면 훌륭한 보좌진을 거느려야 하므로 자신의 용인술(用人術)에 달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용인술도 처지에 따라 운용의 범위는 달라집니다. 같은 용인술일지라도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에 똑같이 적용 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업은 돈으로 인재를 채용합니다. 그리고 그가 자기의 직분을 수행할 능력이 모자라면 언제든 내보내고 새로운 인재를 고용합니다. 또 필요한 인재는 내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 가운데에서도 채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능력껏 용인술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폭이 넓습니다.

 

 공익단체는 용인술의 활용 범위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 제한은 다음 두 가지에 있습니다. 첫째는 인재를 구성원 안에서 선임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일부 임원은 회장이 비구성원 가운데서 선임할 수 있으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에는 앉힐 수가 없습니다. 구성원 가운데 전문성을 지닌 인재가 없다면 회장은 실패하고 맙니다. 결국 우리 단체는 내부에서 인재를 양성하지 않은 탓에 역대 회장들은 모두 실패라는 고배를 마시고 물러났습니다.

 

 요트협회처럼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배치할 인재는 자체에서 양성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 단체는 창립 이래 반세기에 이르도록 아직 한 번도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았으니 인재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단체는 비요트인들과 사이비 요트인들이 상식과 원칙에서 벗어나 주먹구구식으로 단체를 운영하는 바람에 조직의 격자(格子,grid)가 무너지면서(grid down) 기강도 위계질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오합지졸의 패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제아무리 유능한 회장이 부임한다 할지라도 전임 회장들의 쓰라린 전철을 밟지 않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구성원들이 강 건너 불 보듯 뒷짐지고 바라만 볼 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여 우리 모두가 지난날의 무기력과 무관심을 떨쳐 내고 합심하여 새회장과 함께 단체를 새로 창립한다는 각오 아래 재기의 기반을 구축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다들 파괴적 창조란 말을 들어 보았을 겁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이에 대한 보기를 들어 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계산하기 위해 주판을 놓거나 계산기를 두드릴 때 틀렸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털고 처음부터 다시 계산해 나가야 합니다. 틀린 위에 아무리 계산을 

더해 봤자 얻어지는 것은 틀린 답뿐입니다. 이와 같이 단체도 길을 잘못 들었다 싶으면 주판 알을 털고 다시 놓듯이 지난 과오와 그 과오를 저지른 자들을 싹 쓸어내고 새롭게 시작하지 않는 한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를 위한 파괴요 파괴적인 창조라는 것입니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개혁은 두루뭉술하게 지난날의 과오를 저지른 자들을 일부만 걷어내고 그대로 거두어 새사람들과 섞어놓기 때문에 구습의 바이러스(잘못된 관행과 타성)들이 전파되어 새로운 사람들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혁명은 그러한 요소들을 싹 쓸어버릴 수 있으므로 어설픈 개혁보다 혁명이 더 쉽다는 겁니다.

 

 따라서 새로 출범하는 집행부는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격언처럼 새사람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없는 터이니 그들로 하여금 필요한 전문지식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꾸준히 교재를 만들어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모든 회의에서는 지난날처럼 요식행위에 그치지 말고 상정된 의제는 치열한 토론을 거쳐 합의를 이끌어내야 그 토론에서 모두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의에 참석할 임원들이 의제에 대한 사전 공부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데먼데먼한 가운데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공익단체는 사리(私利)를 넘보는 패거리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패거리란 사적인 이익을 기대하여 모여든 무리를 말합니다. 이들은 사리(私利)를 기대하여 그 무리에 소속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하여 철저히 배척합니다. 그 좋은 보기로 지난날 부회장 넷이서 불법적인 상임이사회를 꾸려 회장과 상임이사들을 배제한 채 단체를 농단한 사례가 이를 증명합니다.

 

 저는 구들더께로 집에 칩거하고 있으면서도 <요트용어사전> 편찬에 매달려 있는 터라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렵지만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기꺼이 돕겠습니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새로 구성된 집행부가 아웃사이더의 조언이나 충고 그리고 발전적인 제안을 검토하겠다는 겸손한 인물들로 구성되었을 때에 한하여 협력할 것입니다.

 

 지난날의 집행부를 구성한 자들처럼 잘못되었다는 증거를 들이대고 고치라 해도 막무가내로 버티는 꽹과리낯짝의 후안무치한 자들이거나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어도 알려고 하지 않는 오만불손한 자들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염불(公益)에는 맘이 없고 잿밥(私利)에만 맘이 있기때문에 협회의 고유업무는 제쳐 두고 패악질에만 골몰하다가 결국에는 단체를 수렁에 빠뜨려 놓고 말았던 것입니다.

 

 임원은 실적으로 자기들의 능력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들의 실적이라고는 단체의 조직을 무너뜨리고 제왕의 스포츠를 좀비들의 놀이터로 전락시킨 것밖에 없습니다.

 

 두 번에 걸쳐 그들의 손으로 펴낸 RRS를 살펴봅시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낱말을 버젓이 올려놓는가 하면 틀린 낱말은 말할 것도 심지어는 우리말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맞춤법도 초등학생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터에 이번에도 그들의 손에 맡겼다간 부끄러운 복사판을 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장비규칙은 왜 번번히 빼먹어 구성원들의 알 권리를 박탈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새해와 함께 새회장을 맞았으니 지난날의 과오를 거울삼아 감투놀이와 패거리 운영을 멈추고 일할 수 있는 일꾼들로 집행부를 꾸려 모두가 하나되어 재활의 길로 매진합시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와 다음 세대의 미래를 창조하는 창조자 임을 한시도 잊지 맙시다.

 

 한 알의 밀알은 낱알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들이 말 안을 채우면 한 말이 되듯이 우리 개인은 각자지만 단체의 구성원으로는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심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하나가 되어 저마다의 역량을 한껏 발휘하여 단체의 운영에 참여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실패한 자보다 시도하지 않는 자가 더 나쁘다고 했습니다. 단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바라만 보고 있는 자야말로 비겁자요 불의를 보고도 눈을 감은 자는 겁쟁이입니다. 우리 모두가 새해를 맞았으니 각오도 새롭게 다지고 새로운 출발을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