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차 아메리카스컵 요트대회를 앞두고
아메리카스컵 요트대회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권위 있는 대회로 요트의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첨단 과학기술이 아낌없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꽤 흥미로운 대회이다.
올해 2024년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팀 뉴질랜드의 방어전으로 37차 대회가 열리게 된다. 7월 31일 아메리카스컵 최초로 열리는 세일링 시뮬레이션 비디오 게임 경기인 E-시리즈로 출발하여 예선전과 청소년, 여자 경기 등을 치루고 10월 12일 대망의 본선, 즉 결선 경기가 시작된다.
진화하는 대회, 눈 여겨 볼 몇몇의 대회들
1851년 제1차 대회이후 173년의 긴 대회 역사에서 지난 20여년만큼 커다란 변화를 겪은 적이 없다.
The America's Cup - 172 Years of History (사진 클릭시 영상 링크 연결)
초창기 10노트 이하로 달리던 요트는 2003년 31차 대회에 이르러서는 18노트로 바다를 갈랐다.
이 속도는 바다가 없는 나라 스위스의 알링기 팀이 지난 대회 우승자인 팀 뉴질랜드를 5:0으로 대파하고 우승할 때 기록한 것이다.
2003년 31차 대회 우승팀 스위스 알링기팀, 경기 중 최고속도 18노트를 기록한다.
2007년 32차 대회까지만 해도 단동선체 요트,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배’라고 인식하는 유선형의 단일 선체로 제작된 요트로 경쟁했다. 하지만 더 빠른 배, 더 재밌는 경주를 열망하는 팬들의 요구는 대회의 면모를 탈바꿈시키기 시작했다.
그 해결책으로 2010년 33차 대회에는 처음으로 다동선체 요트가 출현하였다. 사실 아메리카스컵에 다동선 요트가 나타나기 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1988년 당시 융통성 없고 경직된 아메리카스컵 규정(Dead of Gift)에 답답함을 느끼던 몇몇의 요트 디자이너들은 아무런 제한 없이 배를 만들어 경주해보자고 의기투합하고 결국 대회를 성사시켰다.
미국은 60피트짜리 쌍동선에 글라이더의 날개를 수직으로 세운 듯한 신무기를 들고 나왔고, 뉴질랜드 팀은 엄청난 크기의 120피트짜리 단동선을 들고 나왔다. 결과는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 신기술 적용에 목말라하던 미국과 요트크기 제한이 불만이었던 뉴질랜드가 각각 자신들의 답답함을 풀어내긴 했지만 결과는 신기술의 승리였던 것이다. 이 대회는 리틀 아메리카스컵이라 불리면서 다소 해프닝 같은 대회이긴 했지만 어쨌든 아메리카스컵 역사에 엄연히 기록된 대회이고, 21세기 아메리카스컵을 탈바꿈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1988년 미국의 스타스앤스트라입스(Stars & Stripes) 88과 뉴질랜드의 KZ-1
새로운 패러다임 “The Best Sailors on The Fastest Boats”
21세기에 들어서자 미국은 더 빠른 배를 도입하기 위해 아예 아메리카스컵 규정을 바꾸자고 주장했고, 당시 2연속 승리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스위스는 전통의 단동선과 규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결국 재판까지 열리게 된다.
이때 1988년 해프닝 같은 대회의 기록이 뉴욕 대법원 재판정에 증거자료로 제출되고, 다동선의 규정 위반여부를 검토하던 대법관은 우습게도 둘이 경주를 한판해서 이긴 팀의 주장을 받아들이겠다고 제안한다. 그래서 미국과 스위스는 각각 다동선을 만들어 경주하게 된다. 스위스 알링기 팀은 쌍동선 요트를, 도전자인 미국 BMW 오라클 팀은 윙 세일을 장착한 삼동선을 내세웠다. 그리곤 미국이 이겼다. 이 대회가 2010년 33차 아메리카스컵이다.
결국 재판정은 이제 아메리카스컵은 150여년의 역사를 뒤바꿔 ‘다동선을 허용한다’로 판결하게 된다. 그렇다면 선체가 세 개인 삼동선이 최강이란 뜻인가? 사실 33차 대회에서의 가장 화려했던 기술적 스타는 다동선체가 아니라 윙 세일이었다. 펄럭거리는 천으로 만든 세일이 아닌, 글라이더 비행기의 날개같이 구조물 형태의 양력 효율이 훨씬 높아진 세일이 등장한 것이다.
2010년 33차 대회 우승팀 미국의 오라클레이싱팀, 대회 최초의 삼동선
포일링 쌍동선의 시대
2012년 8월, 뉴질랜드 하우라키 만에서 난데없이 못 보던 쌍동선이 나타나 바다 위를 날아다닌 후부터는 아메리카스컵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바로 팀 뉴질랜드가 개발 중이었던 포일을 장착한 고속의 쌍동선 요트, 2013년 34차 대회의 요트인 AC72의 등장이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비행기 날개를 수직으로 꽂아놓은 듯한 윙 세일과 선체 아래 달린 하이드로포일 그리고 쌍동선체라는 점이다. 얼핏 보면 요트인데 바다 위를 붕붕 날면서 범선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린다.
예선전에서 이미 40노트를 넘었고, 결선에서는 47.57노트라는 아메리카스컵 역사상 최고속도를 기록했다. 윙 세일과 하이드로포일 덕분이다. 하지만 이런 괴물도 2017년 35차 대회를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주) 포일링: 물속의 하이드로포일(hydrofoil, 수중익)의 양력을 이용하여 선체를 수면 위로 부상시키는 것
The Untold Story of the Birth of Foiling in the America's Cup (사진 클릭시 영상 링크 연결)
다시 단동선으로? 포일링 단동선으로의 변신
그리고 AC72가 탄생한 지 6년 후인 2018년, 2017년 35차 대회에서 우승한 뉴질랜드는 또 한 번 세상을 비웃듯이 놀라게 한다. AC75 클래스 규칙을 발표한 것이다. 다음 대회의 요트는 날개달린 단동선이라고 선포한다. 조선공학자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은 무거운 킬 없이 날개만으로 달리는 단동선 요트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그 생각을 고쳐주겠어’라며 덤벼든 것이다.
결국 2021년 36차 대회에는 킬 없이 날개만 달린 단동선이 등장했고, 50노트를 훌쩍 넘겨 날라 다니면서 요트의 또 다른 패러다임이 시작되었음을 만천하에 알리게 된다. AC75는 무거운 킬이 없어도 단동선 요트를 물에 똑바로 세울 수 있고, 또 물 위를 날게 할 수도 있음을 입증했다. 2024년 올해 가을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루이비통 37회 아메리카스컵에서도 AC75 규칙은 계속 유지된다.
물론 보트는 2021년 오클랜드에서 본 것보다 한 단계 더 진화될 것이다. 더 큰 양력과 더 빠른 속도를 위해 포일이 더 커지고, 보트는 더 가벼워지고, 전자 장치와 소프트웨어는 더욱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아메리카스컵에 출전하는 성능이 좋은 요트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꽤 광범위하고 어려운 기술들이 적용된다. 설계와 제작에는 최첨단 과학기술이 적용된다.
고성능 자동차 경기인 포뮬러원(F1)에서 아무리 뛰어난 운전 기술을 가진 드라이버라 할지라도 자동차의 성능이 좋지 않으면 우승할 수 없듯이 아메리카스컵 또한 아무리 훌륭한 선원들로 경기에 임한다 해도 훌륭한 성능의 요트가 아니라면 감히 우승을 꿈꿀 수조차 없다. 우수한 선수를 키워 훌륭한 팀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심층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그 결과를 설계에 반영하는 능력이 우승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요소다.
36th America's Cup The Last Call (사진 클릭시 영상 링크 연결)
AC75, 오직 속도만을 위해 탄생한 요트
아메리카스컵에 출전하는 요트들은 각 팀별로 경험 많고 유능한 공학기술 전문가들이 참여해 설계, 제작된다.
선체는 유체역학적 관점에서 최저의 저항을 갖는 길고 가느다란 유선형으로 최적의 성능을 발휘해야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세일과 포일은 승리의 열쇠인 양력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가장 정성을 다해 개발되는 대상이다. 선체는 필요한 강도를 확보하면서도 더 가볍게 만들어야 하므로 선체뿐만 아니라 마스트, 킬, 포일과 러더까지 모든 부가물을 탄소섬유 복합재로 만든다.
아메리카스컵에 출전하는 요트는 일반적인 선박과는 달리 구조 강도에 대한 허용 여유가 아슬아슬할 만큼 좁게 설계된다. 그만큼 치밀한 해석과 설계가 이루어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설계는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 속에서 경기할 때 순간적으로 선체가 부러지거나 파손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습 중 또는 경기 중 부러지거나 손상되어 경기를 포기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세일만 보면 요트라기보다는 비행기에 가깝다. 그것도 비행기에나 달려 있을 법한 거대한 날개를 세로로 세워놓은 모습이다. AC75의 윙 세일은 26.5미터 높이에 두 겹의 세일로 공기의 흐름을 제어하도록 되어 있다. 양력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날개 형태와 배치를 가지도록 설계한다. 그 결과로 50노트를 훌쩍 넘는 요트의 속도는 엄청난 뵌 바람(apparent wind)을 만들어 내면서 바람이 배의 뒤쪽에서 불어오는 상황에서도 클로즈홀드와 윙 세일의 트림 각도가 거의 같다는 것, 이제 화면만 얼핏 보고는 풍상코스인지 풍하코스인지 알기도 어렵다.
The Teams of the 37th America's Cup (사진 클릭시 영상 링크 연결)
첨단 신무기, 킬과 포일의 전쟁
이번 아메리카스컵 요트의 가장 특징은 포일이다. 과거 단동선 요트의 경우 복원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선체 무게의 절반이 넘는 킬을 부착했다. 킬의 크기가 커지자 이번에는 수중 저항과 양력을 최적화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연구했다.
1983년, 아메리카스컵이 시작된 이래 미국에게서 처음으로 트로피를 빼앗은 호주 팀은 네덜란드의 선박유체역학연구소 MARIN과 공동으로 킬의 끝단에 날개가 달린 윙렛 킬(winglet keel)을 개발했다. 이에 자극받은 다른 나라들은 킬을 포함한 요트의 고성능화에 엄청나게 투자하기 시작했고, 1987년 대회를 위해 절치부심한 미국이 NASA까지 동원했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킬은 한동안 아메리카스컵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 특히 1992년 미국 팀이 선보인 벌브 킬은 돌고래와 제트기가 결합한 듯한 아름다운 걸작이었다. 쌍동선인 덕분에 이미 충분한 복원력을 가진 2013년의 AC72는 더 이상 육중한 킬이 필요 없어진 대신 L자처럼 생긴 포일이 스타가 됐다. 포일의 양력으로 선체를 물 위로 띄워줌으로써 물의 저항을 줄여주는 수중익선의 원리다.
그런데 2021년 나타난 AC75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요트다. 단동선임에도 육중한 킬이 없으니 바람의 힘과 밸런스를 이룰 복원력과 횡저항이 다른 장치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그 다른 장치가 AC75에서는 다시 포일이 된다. AC72에 비해 다소 크고 복잡한 모양의 포일은 선체 양옆에서 캔팅되어 물속으로 들락거리고, 복원력과 횡저항을 만들어 바람의 힘과 대응한다. 그리고는 동시에 수직 양력도 만들어 20미터가 넘는 7톤의 선체를 ‘이륙’시킨다. 그리고 요트는 50노트로 달린다, 아니 난다.
아메리카스컵에서 우승하려면 첨단의 신무기 즉, 고성능의 킬이 필요했고 이제는 고성능의 포일이 필요하다.
1983년 우승한 오스트레일리아2의 윙렛킬
개발 중인 벌브킬의 유동흐름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2021년 대회에 등장한 포일의 모습
2021년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이탈리아 루나로사팀의 요트
첨단 기술을 소화하는 스마트한 세일러
포일과 러더만 물에 잠긴 상태로 시속 백 킬로미터가 넘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요트는 그야말로 묘기이다. 밸런스 맞추기의 극치이다. 이런 묘기를 부리는 요트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치밀한 설계 그리고 끊임없는 시운전과 튜닝이 필요하다.
게다가 공학자들은 최고의 성능을 위해 가장 양력효율이 높은 날개를 세일과 포일 그리고 러더에 적용한다. 이런 고효율의 날개는 미세한 받음각 차이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물 밑의 포일을 조절해 요트의 포일링과 자세를 컨트롤해야 하고, 세일과 러더를 조절해 최고의 VMG를 만들어야 한다.
갑자기 불어오는 돌풍에도 요트의 자세를 안정시켜야 하고, 바람이 약해져도 포일링을 유지해야 한다. 태킹과 자이빙 때도 조작을 잘 못하면 포일링이 깨지고 배의 속도는 죽고 만다. 스타트 전 상대와 뒤엉켜 쫓고 쫓기는 전술 상태에서도 포일링은 유지되어야 하고, 상대와의 스피드 대결에서는 0.1노트가 엄청난 거리 차이로 벌어진다. 모두 날개에 대한 미세한 컨트롤이 요구된다. 따라서 공학적 원리와 기술을 이해해야만 이 최첨단의 배를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다.
결국 아메리카스컵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레이스에 필요한 전술적 능력뿐만 아니라 유체역학 등의 공학지식과 요트에 적용된 첨단 기술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요트를 핸들링하는 스마트한 세일러가 필요한 것이다. 이와 같은 기술들의 발전은 아메리카스컵을 더욱 흥미롭고 경쟁력 있는 대회로 만들어 가고 있고, 각 대회마다 새로운 기술적 혁신이 선보이며, 요트 레이스의 경계를 넓혀가고 있다.
지금 많은 세일러들은 아메리카스컵이 있을 2024년의 가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과연 어느 나라가 우승하느냐 뿐만 아니라 이번엔 어떤 신무기가 선보일지, 또 어떤 스타가 탄생할지, 다음 대회의 요트는 또 어떤 새로운 모습일지...
언젠가는 우리 대한민국도 저 신나는 게임을 같이 할 거라 기대하면서, 어쨌든, 팀코리아 파이팅!
(주) 게재된 사진과 영상은 모두 https://www.americascup.com/에서 발췌된 것입니다.
글쓴이 유재훈
약 력
서울대학교 조선해양공학 박사
현. 국립목포대학교 공과대학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현. 한국레이저요트협회 부회장
전. 대한조선학회 해양레저산업기술연구회 회장
전. 대한요트협회 이사
전. 대한요트협회 기술위원장
전. 대한요트협회 외양세일링위원회 위원장
전. 34차 아메리스컵 팀코리아 설계총괄
[참고] 아메리카스컵 경기 보기 How to Watch
제37회 아메리카스컵 홈페이지 37th America's Cup (americascup.com)
5개 세부 대회에 대한 자세한 내용 바로가기 EVENTS INFO (americascup.com)
아메리카스컵 라이브 중계 보기 37th America's Cup (americascu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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