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이사들은 다 어디 갔을까?

장영주|2018-11-10|조회수: 2495

 

 그 많은 이사들은 다 어디 갔을까?

 

 글 장 영 주

 

이사란 무엇인가?

법인은 크게 둘로 나뉜다. 그 하나는 <상법>에 따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범인이요 다른 하나는 <민법><공익법인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법인(비영리)이다. 법인에는 모두 이사가 있다.

법인은 모두 정관을 갖는다. 법인의 정관은 한 나라의 헌법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협회 정관에는 이사의 직무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정관 제24(임원의 직무) 회장은 협회를 대표하고 그 업무를 총괄한다. 부회장은 회장을 보좌하고 회장이 궐위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수행이 곤란할 때 회장의 직무를 대행한다. 이사는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사회에 출석하여 그 직무에 관한 사항을 의결하여 회장 및 이사회가 위임한 사항을 처리한다. 이 규정에는 이사의 직무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얼른 와 닿지를 않는다.

이사의 사전풀이는 이렇다. 법인의 사무를 처리하며 이를 대표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기관, 법인의 사무를 집행하는 직위 또는 그 직위에 있는 사람이다.

이사<理事>는 한자말이다. 한자는 뜻글이다. 그렇다면 한자의 뜻으로 본 이사는 무엇일까? 이사의 앞가지는 다스릴 리요 뒷가지는 일 사다.

다스리다는 겨레말(토박잇말)의 뜻은 또 무엇일까? 의문은 꼬리를 문다. “다스리다수습하여 바로잡다. 보살펴 통제하다. (병을) 고치다. 잘못을 바로잡고 밝혀서 처벌하다. 이는 이사의 앞가지인 다스릴 리만의 뜻풀이이므로 이 뜻을 이사에 적용하려면 뒷가지인 일 사를 각 뜻풀이 앞에 붙여야 한다. 예를 들면 일을수습하여 바로잡다. “일을보살펴 통제하고 관리한다. “일의잘못을 바로잡고 밝혀서 처벌한다.

위의 낱말 사전풀이에서 말하는 사무는 업무요 사업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두 가지 뜻풀이에서 나타난 대로 이사는 법인의 목적 사업을 수행하는 핵심적 기관이요 그 직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법인을 대표하여 권리를 행사한다. 따라서 법인의 흥망성쇠는 이사의 역량과 능력에 달렸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사는 법인의 꽃이다

영리법인의 대표이사 회장도 대표이사 사장도 이름 그대로 이사요 비영리법인의 회장과 부회장도 이사다. 법인에서 이사는 하나의 기관이요 직위이며 그 직위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기업에 입사하여 거기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장차 그 기업의 이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일한다. 기업에서 이사가 되는 것은 마치 군대에서 별을 다는 것과 같이 개인적인 영광이요 자랑이다.

그러므로 이사는 어느 법인에서건 그 조직의 꽃이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하나의 과정물이다. 이사는 일을 하여 결실을 보기 위해 주어진 자리다. 꽃은 활짝 피어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 그것들을 매개로 열매를 맺기 위해 화사한 자태를 뽑낸다. 법인의 이사는 직원을 거느리고 업무를 처리하고 사업을 집행하며 잘못을 밝혀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리가에 화려하게 보인다. 꽃이라고 해서 다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피다 말고 시든 꽃이 있는가 하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꽃도 있다. 법인의 이사도 이와 마찬가지로 깜냥이 되지 않은 무능한 이사가 있는가 하면 부정과 비리를 일삼는 자들도 있다.

이사의 역할은 낱말의 뜻풀이와 글자의 뜻풀이에서 나타난 것들 중에서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이사의 역할 중 심지어는 “(병을)고치다까지도 소중히 받아들어야 한다. 우리 협회는 지금 중병을 앓고 있는 중이다. 이 병은 다른 사람이 고칠 수 없다. 오직 이사들 스스로가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사들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있으니 병은 더욱 깊어지기만 한다. 이렇게 뒷짐만 지고 있는 이사는 법인의 꽃이 아니라 공적이다.

 

왜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의 허물을 들어 충고하면 기꺼이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반감을 갖는다. 나는 협회가 하지 않고 있거나 잘못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많은 글을 협회 누리집에 올려 왔다. 그로 인해 많은 욕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적대감을 갖는 이들도 있었다. 단체의 집행부를 향한 충고가 이러할진대 만일 특정 이사 개인을 지목하여 충고를 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논어에는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 허물이 있다고 충고해 줄 때 기뻐하는 사람은 공자의 3천 제가 중에 자로(子路)밖에 없다.” 그만큼 남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릇 한 조직의 지도적 지위에 있는 이사라면 구성원의 참된 말을 귀담아 듣고 허물을 지적하면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고쳐 나가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과정들이 쌓여 단체는 발전하는 것이다. 만일 자로와 같은 이사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던들 협회가 이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우리 협회 전현직 이사들의 단체 업무와 관련한 허물을 들라면 한도 끝도 없다. 오늘날까지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이사의 허물을 충고한다 해서 고쳐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 나는 그동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꾸준히 어리석게도 충고를 계속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다.

왜 그래야 하는가? 나는 이러한 노력 자체가 발전의 추동력이요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단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번에는 모두가 싫어하는 허물을 들추어 내는 것은 접어 두고 모든 전현직 이사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 스스로 지난 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 사람이 뒤를 돌아보고 반성을 하면 앞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협회 정관 제4(사업)에는 협회가 해야 할 목적 사업이 무려 16개나 올라 있다. 이 모든 사업은 협회가 지속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다. 또 이사들이 해야 할 사업이다. 이사의 수를 29명까지 둘 수 있도록 정관에 규정한 것은 다양한 능력을 가진 이사들의 역량을 결합하여 단체의 목적 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질문은 이렇다.

전현직 이사를 막론하고 당신들은 이사로 재임하는 동안 자기의 전문적 지식과 능력에 따라 16개의 목적 사업들 중 자기의 역량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어 자발적으로 수행하거나 이를 수행하기 위한 방안을 이사회에 건의한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은 댄체의 지도적 직위에 있는 이사로서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느냐는 잣대다. 또한 이사는 경험하는 자리도 경력을 쌓는 자리도 으스대는 자리도 아니며 오직 일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이사들은 지금 다 어디 갔을까?

우리 협회 정관 제18(임원) 3에는 이사 15명 이상, 29명 이하(회장 부회장 포함)”로 규정하고 있다. 각 시도요트협회도 이에 준한 정관을 가졌을 것이다. 이들 한 단체에 평균 20명의 이사가 재임한 것으로 가정했을 때 중앙 단체와 17개 시도협회의 이사를 모두 합하면 360(20×18개 단체)이 된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 협회(시도협회 포함)가 창립된 이래 반세기 동안 이사를 거쳐 간 사람들은 줄잡아 2천 명은 넘을 것이다. 이 많은 이사들은 모두 취임승락서를 쓰고 자발적으로 취임했다.

이사들은 재임하는 동안 다들 요트인을 자처해 왔고 요트를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한데 이 많은 이사들은 지금 다 어디 갔을까? 전직 이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현직 이사들도 움직임이 도통 보이질 않는다. 우리 협회 이사들은 조직의 꽃이 아니라 벽화란 말인가?

왜들 이럴까? 이사들이 스스로 요트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으스대는 것은 그대로 좋다. 요트인이라면 그에 합당한 처신이 따라야 한다. 이사직에 있을 때만 요트인이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나 몰라라 하는 자세는 사이비 요트인의 전형이다. 이사로 재임할 때는 패거리를 지어 거들먹거리던 그 위세는 다 어디 가고 단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는 침묵한다? 참으로 비겁하고 옹졸한 처세가 아닌가.

너나없이 키손(틸러)을 잡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다들 요트를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니 협회의 이사들이라고 해서 이에 예외는 아니다. 사랑은 위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사랑의 실천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고 했는데 당신들은 요트를 사랑해서 무엇을 알게 되었으며 무엇을 보았는가? 사랑은 헌신으로 이어진다고 했는데 당신들은 지금 요트경기 발전에 헌신하고 있는가? 함석헌 선생의 말을 잠시 곱새겨 보자. “사랑은 자기 할 것을 합니다. 사랑은 제 말을 가집니다. 사랑만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습니다.” 당신들은 요트를 사랑해서 할 일을 했는가? 요트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또 요트경기의 발전을 위한 충고의 말을 알아들었는가? 오늘날 협회의 실상으로 볼 때 그동안 요트인으로 자처하던 이들은 다 사이비 요트인들이었고 요트를 사랑한다고 헸던 이들은 거짓 사랑으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어찌 단체가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꼼짝하지 않고 엎드려 있는가?

 

문제는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에 있다

한 세대가 가면 다음 세대가 뒤를 잇는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요 신의 섭리다. 인간의 수명은 한정되어 있어 누구도 이를 거역할 수 없다. 능력자라고 해서 이에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니 단체가 영속하려면 다음 세대에 필요한 인재를 지금 양성해야 한다. 이것이 조직의 원리다.

이에 대해 경영학의 태두요 미래학자인 피터 드러커 교수는 그의 저서 <비영리단체의 경영>에서 이렇게 피력했다.

조직이란 크게 보면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지닌 개인의 한계를 극복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영속할 능력이 없는 단체는 그 자체로 실패작이다. 그러므로 조직은 내일의 조직을 운영할 사람을 오늘 준비해 두어야 한다. 따라서 조직은 늘 인적 자본을 쇄신해야 한다. 조직은 인적 자원을 꾸준히 향상시켜야 한다. 다음 세대는 현 세대가 축적해 놓은 고된 작업과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어야 한다. 그 다음 그들은 선배의 어깨 위에 올라앉아 또 다른 세대의 기초가 될 노력과 헌신을 해야 한다. 현재 수준의 우수성, 비전 그리고 실적만을 겨우 유지하는 것은 적응 능력을 잃어 버렸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의 이 말은 따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재를 양성하지 않은 단체의 종말은 곧 멸망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우리 협회를 보라.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은 식물단체가 아닌가. 이것은 바로 그동안 인적 자본을 확보하지 않은 증거다.

조선 시대 거상 임삭옥은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고 했다. 장사를 해서 상품이 유통되고 소비가 활발해져야 생산과 소비가 원활히 돌아가서 경제가 활성화되는데 이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장사꾼이기 때문이다. 이조 시대의 천대받던 한낱 장사꾼도 이러했을진대 21세기의 문명사회에 사는 우리가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운영한다면서 왜 이다지도 인재 양성에는 등한했을까?

인재 양성은 말로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인재 양성이라면 우선 교육의 떠상이 떠오른다. 요트에 필요한 인재 교육을 아무나 붙들고 할 수 없으니 그 대상은 요트에 뜻을 둔 단체의 구성원들일 수밖에 없다. 교육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 이들을 장기에 걸쳐 한 자리에 모을 수도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든다. 그러나 그것이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을 포기한 구실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교육은 대상자를 한 자리에 모으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방법의 하나로 아웃사이더인 늙은이들이 <요트도서편찬모임>을 꾸려 구성원들이 필요로 하는 책을 펴내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이들만이라도 집에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공부할 수 있도록 시도했다. 그 결과물은 많았다. 그 중 10여 가지는 협회 누리집에 올렸고 나머지 <요트경기의 전략과 전술, 날쌔고 슬기롭게>는 모두 7권으로 짜여 있는데 이를 편집하여 파일에 담아 인쇄만 하면 언제든 책을 펴낼 수 있도록 해주었음에도 그 중 3권만 출간했을 뿐 나머지 4권은 협회 금고에서 7년째 잠자고 있다. 이 이야기는 지금 처음 하는 것이 아니다.

알 만한 구성원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집행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돈 천여 만원이면 그 4권의 책을 펴낼 수 있다. 돈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그 책들을 펴내서 팔면 거기에 투입된 이상의 돈이 생긴다. 집행부의 의지가 문제였다. 또 구성원들이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던들 소중한 공부감을 7년씩이나 방치해 둘 수 있얼을까? 책을 통한 교육 방법이 물거품이 되자 나는 개인적으로 또 다른 방법을 찾아 시도했다. 그것은 협회 누리집을 통한 교육 방법이었다. 물론 교육 효과는 모른다. 교육을 위해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어 뭔가는 시도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기회와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기회는 늘 우리의 곁에 있고 희망은 우리의 맘속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들을 붙들고 꺼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윗선에서는 이사들이 알아서 하겠지. 이사들은 위에서 지시가 있겠지 하고 또 구성원들은 집행부가 해주겠거니 하고 기다릴 뿐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힘을 합해 일을 하지 않는 한 외부에서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구성원은 단체의 주인이다. 전현직 이사들도 다 구성원이다. 주인들이 일에 손을 놓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남들이 내 일을 돕겠는가?

조선시대 개혁자 조광조는 잃기 쉬운 것을 기회요 얻기 어려운 것은 시기다고 했다. 우리 단체는 지금 위기에 놓여 있다. 위기란 위험과 기회가 합쳐진 말이다. 위험을 걷어내면 그것이 바로 기회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닥친 위험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위험을 의식하고 제거하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는 한 위험은 늘 내 곁에 존재한다. “포기한 자보다 더 나쁜 자는 시도하기를 두려워하는 자다고 했다. 이 세상에서 시도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시작이 반이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기회고 희망이고 다 그것을 얻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시도했을 때 비로소 내것이 될 수 있다.

기회와 희망은 오직 하나, 구성원들의 깨달음(覺醒)에 달렸다. 인간은 아무 때나 깨닫지 않는다. 깨달음에는 짬수(契機)가 있어야 한다. 모든 구성원들이 단체 존망의 갈림길에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박감이 구성원들을 짓눌렀을 때가 바로 깨달음의 짬수다.

극즉반본(極則反本)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은 내리막길에 접어들면 바닥에 이르러서야 본디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가령, 자동차가 언덕빼기에서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고 있을 때는 아무도 그것을 끌어올릴 수가 없다. 그것이 바닥에 이르러 멈춰섰을 때만이 본디로 끌어올릴 수 있다. 우리 단체는 지금 내리막길에서 아래로 구르고 있다. 구성원들에게서 깨달음의 낌새가 보이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 단체는 아직 바닥을 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바닥을 치든 또 다른 짬수에 따르든 구성원들의 깨달음이 없이는 기회도 희망도 기대하지 말자. 새로운 회장이 취임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기회와 희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집행부는 이사회라는 합의체다. 회장이 혼자서 일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언제는 회장이 없어서 단체가 시들었는가? 단체의 일꾼은 이사다. 헌데 그 많은 전현직 이사들은 다 어디가고 단체가 어려움에 처했음에도 보이질 않는다. 시집 간 아낙네들도 자기가 자라난 친정이 어려움에 처했다면 걱정하며 어떻게든 도우려고 애를 쓰는데 단체의 책임 있는 직위에 있던 이사들이 단체가 어려움에 처하자 나몰라라 하고 돌아서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은 구성원들의 깨달음을 통해 일꾼다운 이사를 찾는데 있다. 결국 기회와 희망은 사람의 문제인지라 인재 양성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인력을 양성하지 않는 한 위기는 늘 따라 다니기 마련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만이 문제의 고갱이요, 해법이다.